2012년 겨울, 창천동의 6평 남짓한 자취방에서 나와 애인은 윗옷을 벗었다. 한참 동안 어루만지며
서로의 조바심을 나눠 가졌다. 창문에 습기가 뿌옇게 서렸을 때 즈음 갑자기 애인은 침대 밑 수납공간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연두색 빛깔에 무화과 정도의 크기, 부드러운
고무 재질의 물건이었다. 버튼을 누르자 은은한 굉음과 함께 진동이 이불 위로 퍼졌다.
무화과의 떨림과 함께 내 마음도 떨렸다. ‘저
작은 무화과가 내 것을 완벽하게 대체해버린다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과 함께 마음이 떨렸다. (사실 기술력만 놓고 보면 대체되고도 남을 텐데… 참 패기로운 20대 초반이었다) 침대에 출연한 도구 하나하나에 마음을 졸이던 시절(a.k.a.흑역사)을 회상하며 오늘의 칼럼을
적는다.
인간은
왜 섹스할 때 도구의 사용을 꺼리는가
선인장과
줄자가 나란히 곧추선게 참 멋집니다.jpg
이 불편함과 불안함의 기저에는 인간 본성이 맞닿아 있다. 나 외의 다른 것을 통해 애정과 사랑이 대체되지 않았으면 하는 원초적 본능, 나의 영역에 대한 보호본능이 도구에도 투영된다. 즉, 도구의
등장을 경쟁자의 출현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미디어(특히나 포르노)가 보여주는 자극적인 섹스도 한몫한다. 길고 긴 러닝타임 동안 다채로운 자세와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화면을 꽉 채우는 파워 섹스 마스터들은 육체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판타스틱한 오르가슴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이를 보면서 인간은 꿈을 꾼다.(혹은
악몽을 꾼다) 순수하게 내 육체만으로 애인을 대차게 만족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그런 꿈을 꾼다. 호접지몽이란 말을 덧붙이고 싶다.
D(도구)의 의지
요새는
정말 예쁘게 나온답니다. 섹스토이.
오르가슴이 한 번의 잠자리, 한 번의 체위, 한 번의 교감을 통해 찾아왔다면 그것은 행운이다(로또다). 그보다 더 즐겁고 황홀한 일이 있을까. 그러나 우리 모두 알고
있듯 행운은 매번 찾아오지 않으며 모든 섹스가 절정일 순 없다. 육체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치르는 샤워와 취침에도 딱 좋은 물 온도를 찾기 위해 수도꼭지를 매만지고 최적의
수면자세를 찾기 위해 온몸을 뒤척이는, 그런 예민한 육체를 가진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하물며 섹스라고 다를까. 육체는 매번 황홀한 오르가슴에 오를 만큼
단순하지 않다.
침대에 오르기 전, 머리를 딱 알맞은 각도로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별 뜻 없이 예매했던 프랑스 독립영화가 퍽 맘에 들었기 때문에, 손톱을 너무 깊게 깎았기 때문에, 어제 뜨거운 것을 먹다 입천장이
까졌기 때문에, 그런 순간의 여파들이 오르가슴을 만들어내거나 멀어지게 한다.
그래서 인간은 도구를 사용한다. 복잡하고
예민한 내 몸이 빠르고 쉽게 안정적인 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그렇게 되어 상대와 즐거운 시간을 나눌
수 있도록.
섹스에 있어 도구를 내 손에 쥔다는 것은 내 몸을 바로 알겠다는 의지이자 노력이며, 상대의 몸에 섹스토이를 댄다는 것은 함께 오르가슴을 찾아 보자는 제안이다. 행운에
찾기 위해 행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현명함이다. 도구의 사용은 그런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호모
파베르 : Homo faber
인간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경험과 쾌감을 위해 도구를 사용한다. 20kg가 넘는 산소통을 메고 바닷속으로 뛰어들고, 세 달치 월세에 달하는 비용을 주고 아이폰을 구매한다. (뭐가 바뀐 건지 잘 모르겠는 IOS 유저의 변) 그야말로 도구를 사용하고 사랑하는 동물, 호모 파베르다.
인간이 돈을 들여 어떤 물건을 개발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호모 파베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우리는 침대 위에서도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섹스를 말하고 나누는 것을 넘어 사용하고 즐겨야 한다. 그것은 상대를 배제하는 것이 아닌 배려하는 것이다.(센스있고 섹시한 느낌이기도 하다)
무화과가 덜덜 떨리는 것만큼, 그렇게 ‘몸 떨리는 기쁨’이 침대 위에서 더 많아졌으면 한다. 당신의 잠자리에 큰 떨림이 있기를 기대하며, 살 떨리는 여름 노래를 하나 추천하며 글을 마친다.
ⓒInstinctus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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