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샤프 1988
뒤풀이에서 절대 틀면 안 되는 노래. 연극/연출/영화/방송 관계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노래. 그것은 바로 샤프의 ‘연극이 끝나고 난 뒤’다. 재즈피아노의 아련한 선율과 물기를 머금은 집시풍 보이스가 공연이 끝난 후에 찾아오는 특유의 허무함과 고독함을 잘 녹여냈다.(엄정화의 엔딩크레딧이랑 비슷한 감성이다)
공연과 무대는 화려하다. 그리고 공허하다. 이 넓다란 간극을 위로하는 자리를 흔히 ‘뒤풀이’라고 한다.
무대 위와 아래가 업무공간인 사람들에게 뒤풀이는 매우 중요하다. 기획회의는 빠져도 뒤풀이는 절대 빠져선 안 되는 게 관례다. 왜 그럴까? 무대 위 찰나의 쾌감 뒤에 찾아오는 허무함을 혼자서 견디긴 너무 벅차니까. 그 감정을 서로 마주 보고 위로하고 실타래처럼 엉긴 것들을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되니까. (무대 위에서 10년을 넘게 일했던 아티스트는 마약중독자 거나 현자거나 둘 중 하나라 카더라)
쾌감과 허무, 그 둘은 언제나 그렇게 정비례한다. 균형을 맞춰야 한다. 섹스 역시 그렇다.
침대 위라는 무대
여기 또 한쌍의 인간이 무대 위에 서 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육체로 누구보다 빠르고 격정적인 호흡으로 예술을 빚는다. 비비고 핥고 멈추고 힘준다. 귓가에 들리는 모든 소리들은 살갗이 부딪히는 소리와 불규칙한 숨소리와 울음 같은 신음이다. 그렇게 오래 시간이 지나고 무대는 클라이맥스에 오른다. 그리고 퍼진다. 숨죽였던 서로의 공연은 그렇게 끝난다.
그제서야 주변의 소리가 들린다. 다시 탁상시계 소리도 들리며, 다시 옆집의 도어락 소리도 들린다. 하나였던 둘이 다시 분리되는 순간 본질적인 고독과 허무가 찾아온다.
그러나 이 업계는 유독 뒤풀이에 박하다. 뒤풀이는 고사하고 함께 무대를 만들었던 관계자에게 인사도 안한 채 쌩하니 사라지는 경우도 흔하다. 그 뿐인가, 무대 위의 흔적들을 끝나기가 무섭게 벅벅 닦아내곤 한다.(대부분 침대 옆 크리넥스 티슈가 사용된다)
섹스가 끝난 초저녁에 창밖에 어스름핀 네온사인을 보면서 바지에 다리를 넣고 건조한 웃음을 머금은 채 헤어진 경험이 있는가. 내 존재 자체가 한꺼번에 피어 올랐다가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간 그 허무함을 느껴보거나 느끼게 해 준 적이 있는가. 과거 내 행동이 오버랩 된다면 당신을 이렇게 부르고 싶다. 업계 용어로 ‘같이 일 못할 사람’이라고.
여운까지 닦아내진 말아줘
섹스가 끝나고 난 뒤 에티켓은 매우 중요하다. 사정한 뒤 승리한 레슬링 선수마냥 몸을 뒤집어 가쁜 숨을 몰아 쉬는 A나, 국과수 탐사하듯 휴지로 몸을 닦아내며 화장실로 뛰어가는 B나 섭섭하긴 매한가지다. 깨끗하고 정갈한 몸상태인 것은 섹스하기 전으로 족하다.
섹스를 한 뒤에 바로 자리를 떠도 되는 상황이란 게 과연 있을까? 특수한 상황 몇 개를 꼽을 수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 침대를 당장 박차고 나와야 하는 상황. 어머니가 급체하셔서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어 침대를 당장 박차고 나와야 하는 상황. 아까 저녁에 먹었던 까르보나라가 (유당분해가 잘 안되는 동양인의 체질 덕에) 대장의 이상증후를 일으킨 상황.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위 상황에 해당되는 것이 없다면 뒷풀이에 참석하자.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더워진 땀을 닦아주고 오래 껴안으며 무대의 여운을 나누자. 우리는 열정적인 무대를 뒤로 하고 진솔하게 서로와 교감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오늘의 공연이 성공적이었는지를 물어보지 말자. 무대 위에서 함께 움직였던 그 순간, 자체만을 서로 나누고 또 위로하자.
당신의 곁에서 숨을 고르고 있을 애인이 있다면, 섹스를 마친 뒤 여운을 쓰다듬을 기회가 있다면, 그 때 듣기 좋을 노래를 오늘도 하나 추천하며 글을 마친다.
https://www.youtube.com/watch?v=1JaJtNLhl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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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작성자 고****
작성일 2021-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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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작성일 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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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작성일 2019-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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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ㅇ****
작성일 201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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